전국에 내리던 폭설주의보가 점점 사그라들어갔다.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모든 시험과 실기 시험이 끝나가는 시점이었다. 원하던 대학교에서 입학이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된다 싶더니 올 겨울의 마지막 눈이 내렸다. 패딩 하나만 걸쳐 입고 운동장을 나서던 은수의 코 끝이 빨갰다. “야 도은수! 피시방 갈건데 가자!” 아이들이 은수에게 같이 ...
재하에게 가만히 안겨 숨을 고르던 은수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형 이 노래 기억나요?”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에릭사티의 피아노 연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 팀장 센스있네. “너가 좋아하는 노래잖아.” 잊어버릴 리가... 말을 덧붙이려던 재하가 잠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익숙하지만 뭔가 달랐다. “이거…좀 다른데?” 그의 표정을 살피던 은수가 입을 열었...
“도은수!!” 저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은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쪽을 쳐다보았다. 모든 것이 지는 계절에 만났던 사람. 그렇게 지는 낙엽처럼, 떨어져 흩날리는 채로 보내야 했을 사람. 재하가 다시 눈 앞에 서 있었다. 비단 큰 소리에 놀란 것만은 아니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항상 딱 들어맞게 다려입었던 셔츠는 구겨진 채였...
드리머가 변경된 지 열흘째 되는 날이었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재하의 모습은 원래라면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만 했다. 그게 서재하의 모습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두 눈 깊게 패인 다크써클은 그가 얼마나 망가진 상태였는지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이따금 허공을 응시할 때가 그랬다. “저러다 쓰러지시면 어떡해요?” “그러게요. 너무 걱...
예컨대 이 전의 내 하루는 지루하고 특별할 일 없이 그저 하루하루 반복되기만 했던 날들이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똑같은 사람들, 주고받는 대화도 날마다 크게 다르지 않았고, 시간은 흐르기에 그저 계절이 바뀌는 게 내 일상 속 변화의 전부였다. 하지만 내 일상에 갑자기 등장해버린 그 형을 통해 요근래 내 하루하루는 행복 그 자체다. 사실상 평소대로 내 하...
문을 열자 문틈으로 조금의 빛과 함께 포근한 향이 새어나왔다. 체리향인 것 같기도 하고, 우드향인 것 같기도 한 이 향은 어딘가 익숙했고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이 향은 내 기억에 의하면, 예전에 길거리에서 걷다가 우연히 내 옆을 지나갔던 어떤 사람에게서 났던 향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당시에 그 향이 내 코를 스치고 갔을 때, 어떤 향인지 너무...
“은수, 오늘은 안 피곤해? 오늘 좀 괜찮아 보이네?” “오빠, 어제 되게 늦게 잔거 아냐? 근데 오늘 왜 이렇게 쌩쌩해-” “뭐야, 도은수. 오늘 왜 이렇게 정신을 놓고 있냐?” “야 야, 얘 왜 이렇게 실실거리고 있어? 뭐야, 뭐야.” 모두가 바쁜 출근 시간과 등교시간.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학교에서조차. 나를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
‘당신을 원해요-음성녹음’ 얼마 전에 학교에서는 피아니스트가 된 선배님을 초청해서 연주회를 진행한 날이 있었다. 그 날, 그저 수업을 안들어서 좋아하는 친구들에 비해서 나는 진심으로 연주회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다. 그래서 신이 잔뜩 나서 기분 좋게 친구들을 통솔하며 학교의 공연홀로 들어갔었는데 하필 자리에 앉자마자 선생님들이 나를 반장이라고 계속 부르시고 ...
툭- “하, 진짜 무슨 귀신도 아니고..” 아침 7시, 항상 맞춰놓는 알람이 귓가에서 시끄럽게 울어댔다. 밍기적거리며 몸을 반대편으로 돌려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곤 알람을 껐다. “아아, 학교, 가기, 싫어어.” 핸드폰을 베개 옆으로 던지고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침대에 다시 누웠다. 누가 보면 좀비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으으... 앓는 소리...
“서재하. 너 요즘 뭐하고 다니냐?” “뭐지? 그 화난 것 같은 말투는? 굉장히 거슬리는군.” “하- 뭐하고 다니냐고. 너 윗선에서 말 나오는 거 몰라?” “그게 무슨 상관이지? 드리머 꿈 설계하라고 해서 하고 있는데. 그게 다야-” “아니잖아. 아니니까 말이 나온다는 거 너도 잘 알지 않냐?” “하, 어쩌라는 거야. 너 나 일하는 거 안 보이냐? 잔소리할...
“형-!!” 짧은 거리지만 뛰어 오느라 숨이 찼는지, 숨을 고르는 은수의 몸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하지만 은수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지 조금은 빨개진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강아지 같아… 큼. 강아지 같다는 내 생각이 은수에게 미치지 않으련만 괜히 부끄러워 헛기침을 했다. “형. 목 아파요? 얼굴 좀 빨간데?” 얼굴이 빨개졌다며 은수는 제 손을 내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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